
우리 관계가 어긋난 까닭을 나는 아직도 정확하게 짐작할 수 없다. 어느 날부터 그렇게 되었다. 불씨가 서서히 꺼지는 것과 한꺼번에 활활 타버리는 것 중에 무엇이 더 나을까. 십 년을 넘게 친구로 지냈는데 나는 재이에 관해 제대로 아는 것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재이 역시 나에 관해 '제대로' 알지는 못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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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6개의 문장
우리 관계가 어긋난 까닭을 나는 아직도 정확하게 짐작할 수 없다. 어느 날부터 그렇게 되었다. 불씨가 서서히 꺼지는 것과 한꺼번에 활활 타버리는 것 중에 무엇이 더 나을까. 십 년을 넘게 친구로 지냈는데 나는 재이에 관해 제대로 아는 것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재이 역시 나에 관해 '제대로' 알지는 못했으니까.
칠십대가 되면 죽음을 안고 살아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사실은 이미 나이 쉰에 그런 비슷한 걸 느꼈다고 한 적이 있었다. 귓속으로 저승이 육박하는 느낌.
그날은 다른 날들과 같이 내 발목을 붙들고 질질 따라온다. 나는 그날에 관한 기억도 언제까지나 지속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떨치지 못한 다른 날들처럼. 주화입마에 빠진다고 할까. 그날, 가려움은 밤이 깊도록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이 세상에서 수많은 인간이 자식을 낳는다. 자식을 낳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까지. 자격 있는 사람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자격 없는 사람은 분명히 존재한다는 게 내 지론이었다. 그런데도 인간이라면 누구나 번식해야 한다고 가르쳐왔으니까 자꾸 죄 없는 아이들이 태어나서 인생이라는 화염 속에 던져지는 것이다.
누구나, 그 누구여도 비숙련 노동을 할 수 있는 거지만 나는 재이가 그런 일을 한다는 데 매번 분노를 느꼈다. 왜 본업을 하면서 그토록 노력하는데도 항상 돈에 쪼들려야 할까. 과거 나의 상황도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도 다시 잘 지내야 하는 이유를 누가 묻는다면, 나는 이제부터의 우정은 다소 합목적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고 대답할 것이다. 내게는 재이를 지켜야 하는 이유가 있는데, 더는 우정과 낭만과 같은 낭만적인 관념 따위로 그것을 설명할 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