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헤모글로빈 분자에서 아름다움을 읽어낸 호프만에게 시란 어떤 것이었을까 시와 물질, 또는 시라는 물질에 대해 생각한다 한 편의 시가 폭발물도 독극물도 되지 못하는 세상에서 수많은 시가 태어나도 달라지지 않는 이 세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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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8개의 문장
헤모글로빈 분자에서 아름다움을 읽어낸 호프만에게 시란 어떤 것이었을까 시와 물질, 또는 시라는 물질에 대해 생각한다 한 편의 시가 폭발물도 독극물도 되지 못하는 세상에서 수많은 시가 태어나도 달라지지 않는 이 세상에서
차가운 바닥 위에 토하는 울음 풀잎 없고 이슬 한 방울 내리지 않는 지하도 콘크리트벽 좁은 틈에서 숨 막힐 듯, 그러나 나 여기 살아 있다 귀뚜르르 뚜르르 보내는 타전소리가 누구의 마음 하나 울릴 수 있을까 지금은 매미떼가 하늘을 찌르는 시절 그 소리 걷히고 맑은 가을이 어린 풀숲 위에 내려와 뒤척이기도 하고 계단을 타고 이 땅밑까지 내려오는 날 발길에 눌려 우는 내 울음도 누군가의 가슴에 실려가는 노래일 수 있을까 나희덕 | 귀뚜라미
너에게로 가지 않으려고 미친 듯 걸었던 그 무수한 길도 실은 네게로 향한 것이었다 까마득한 밤길을 혼자 걸어갈 때에도 내 응시에 날아간 별은 네 머리 위에서 반짝였을 것이고 내 한숨과 입김에 꽃들은 네게로 몸을 기울여 흔들렸을 것이다 사랑에서 치욕으로 다시 치욕에서 사랑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네게로 드리웠던 두레박 그러나 매양 퍼올린 것은 수만 갈래의 길이었을 따름이다 은하수의 한 별이 또 하나의 별을 찾아가는 그 수만의 길을 나는 걷고 있는 것이다 나의 생애는 모든 지름길을 돌아서 네게로 난 단 하나의 에움길이었다
너에게로 가지 않으려고 미친 듯 걸었던 그 무수한 길도 실은 네게로 향한 것이었다
마음이 기우는 대로 피와 땀과 눈물이 흐르는 대로 가보면 통증과 배고픔과 추위를 느끼는 영혼들 곁이었다. 시는 영원히 그런 존재들의 편이다.
어떤 핏기와 허기와 한기가 삶을 둘러싸고 있다. 그것은 일종의 벌거벗음에서 왔다.
이 꽃그늘 아래서 내 일생이 다 지나갈 것 같다. - 나희덕, ‘오 분간’ -
솜사탕 봉지를 뜯었다. 솜사탕의 단맛으로 맥주의 씁쓸한 뒷맛을 가시게 하고 싶었다. 어떤 시간은 솜사탕 같다. 첫맛은 달콤하지만 들척지근한 뒷맛이 남는다. 분홍빛, 연두빛으로 부풀었던 설탕 실이 꺼지고 나면 침 범벅이 된 나무젓가락이 남는다. 그것이 관계의 민낯이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자신의 무료한 인생을 통째로 구원해 줄 왕자 따위는 그 어디에도 없다는 걸, 스무 살 수미 언니도 알고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