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는 오직 자신의 일에만 열중한다. 지구상에 희망을 남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 돌아가는 것을 통 알지 못해서, 지구가 멸망할 때도 하던 대로 사과나무를 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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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10개의 문장
그는 오직 자신의 일에만 열중한다. 지구상에 희망을 남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 돌아가는 것을 통 알지 못해서, 지구가 멸망할 때도 하던 대로 사과나무를 심을 것이다.
깊은 밤에는 어디든 날아갈 수 있다. 별들은 마치 이 밤의 진수성찬 위에 덧뿌려진 깻가루 같이 고소히 박혀 있다. 그 밤참을 성대히 받아먹고서, 징검다리처럼 놓인 가로등을 겅중겅중 디뎌 밟으며, 나는 힘차게 깊은 밤을 날아다닌다. ... 나뭇잎과 풀잎 끝마다 한 방울씩 이슬을 매달아주기 위해 일일히 허리를 숙이며, 나를 찾아와준 갖은 고마운 것들에게 다른 밤에 꼭 만나자며 배웅을 하기 위해 끝없이 손을 흔든다.
나는 당신의 칼 없는 칼자루, 서랍 속의 난감한 편지, 봉합조차 뜯긴 세금계산서, 발가벗은 육필 엽서, 나는 당신의 순정 없는 심복, 꽃그늘 속 짓밟힌 꽃잎 여러 장, 심장을 꺼놓은 일렉트로닉 토이, 나는 당신의 숨겨놓은 독, 엎질러진 약병, 완벽하지 못한 타인, 나는 당신의 내부의 내부, 나는 당신의 잃어버린 한쪽 머리, 댕강댕강 잘려나가던 단종된 참수형 처형기계...
순진함은 때가 묻지 않은 상태다. 순진함은 미숙함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고, 무지함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잘 속고 어리석고 자기 눈으로 모든 것을 판단한다. 반면 순수함은, 묻은 때를 털어낸 상태다. ... 순수함은 성숙함의 한 속성이며, 현명함에 대한 하나의 근거다. 순진한 사람은 속기 쉽지만 순수한 사람은 속지 않는다. 순진한 사람은 조종하기 쉽지만 순수한 사람은 조종할 수 없다.
'이해'란 가장 잘한 오해이고, '오해'란 가장 적나라한 이해다. "너는 나를 이해하는구나"라는 말은 내가 원하는 내 모습으로 나를 잘 오해해준디는 뜻이며, "너는 나를 오해하는구나"라는 말은 내가 보여주지 않고자 했던 내 속을 어떻게 그렇게 꿰뚫어 보았느냐 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공감'이 유발하는 설득은, 이성적인 설득보다 훨씬 더 직접적이며, 한마디면 충분할 경우도 많다. "네가 옳아."혹은 "그것도 좋은 방법이지."같은 한마디를 듣고 싶어서, 우리는 길고 긴 하소연을 할 때가 많은 것이다.
'좋아한다'는 고백은 어쩌면,내가 느끼고 있는 이 호감이 어떤 형태인지 알기 싫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을지 모른다. 사랑이라는 말을 쓰기가 꺼려질 때에 흔히 쓰며, 존경에도 흠모에도, 신뢰에도 매혹에도 귀속시키기 미흡한 지점에서 우리가 쓰는 말이 바로 '좋아한다'는 표현이다. 어쩌면 더 지나봐야 알 수 있겠다는 마음 상태이거나, 이미 헤치고 지나온 것에 대해 온정을 표하는 예의 바른 말이거나, 적극적으로 판단 짓기에는 미온적인 상태이거나, 더 강하고 자세한 호감의 어휘를 비껴가기 위한 방법적 거절이거나......
허전하다. 상실감 같은 것. 무엇인가 있다가 없어진 상태. 혹은 있기를 바라는 그것이 부재하는 것. 그래서 허전함에는 무언가를 놓아버려 축 처진 팔이, 팔 끝엔 잡았던 느낌을 오롯이 기억하고 있는 손이 달려 있다.
스스로에 대한 지나친 연민이 눈물로 구현되는 것을 구경하는 불편함. 눈물을 흘리는 사람 앞에서 생기는 연민에 대한 거부감. 눈물 앞에서 무감할 수 있다면 물론 그것은 감정의 간격이 긴장감을 잃게 할 만큼 멀기 때문에 그렇겠지만. 실컷 울고 나면 우리 몸은 중력을 줄인 것처럼 가벼워진다.
몸의 귀도 한쪽만 쓰면, 소리의 방향에 둔감해진다고 한다. 마음도 그렇다. 방향을 잃는다.나를 부르는 소리가 어디서 들려오는지 잘 듣지 못하고 헤멘다.내 마음은 언제나 귀를 잘 닦고 양쪽을 함께 쓰고 싶다.나를 부르는 소리를 잘 듣고,어디서 들려오는지 잘 알고, 헤메지 않고 가 닿고 싶다. 마음이 가는 방향을 두 개의 귀의 균형 속에서 결정할 수만 있다면, 방황하고 소모하는 시간들을 아주 조금은 줄일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