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의 인칭이 포개어진다. 그 감격이 좋았던 것이다. 차분한 채로 미쳐버릴 것 같은 일인칭 세계에서 잠시나마 빠져나와 숨을 쉴 수 있기만 하면, 나는 물속의 고래처럼 얼마간 삶을 참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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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10개의 문장
우리의 인칭이 포개어진다. 그 감격이 좋았던 것이다. 차분한 채로 미쳐버릴 것 같은 일인칭 세계에서 잠시나마 빠져나와 숨을 쉴 수 있기만 하면, 나는 물속의 고래처럼 얼마간 삶을 참을 수 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만이 아니라 그와의 관계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탄생하는 나의 분인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나는 당신과 함께 있을 때의 내가 가장 마음에 든다. 그런 나로 살 수 있게 해 주는 당신을 나는 사랑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일이 왜 그토록 고통스러운지도 이해할 수 있다. 그를 잃는다는 것은 그를 통해 생성된 나의 분인까지 잃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의 죽음으로 인해 그 사람과만 가능했던 관계도 끝난다.
나는 사랑을 '어떤 태도'라고 생각하는데,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려는 노력이 관계를 지킨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랑에 빠진다는 프랑스어식 표현에는 '떨어지다(tomber)'라는 동사를 쓴다. 병에 걸렸을 때도 마찬가지다. 프랑스인들은 병에 걸리는 것이 아니라 병에 떨어지고, 사랑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사랑에 떨어진다고 말한다. 병이나 사랑 모두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어느 날 갑자기 그렇게 되니까.
나는 너를 먹을 거야. 너를 먹고 아주 오랫동안 살아남을 거야. 우리를 사람 취급 안 하던 괴물 같은 놈들이 모조리 늙어죽고 병들어 죽고 버림받아 죽고 그 주검이 산산이 흩어져 이 땅에서 완전히 사라진 다음에도, 나는 살아 있을 거야. 죽은 너와 끝까지 살아남아 내가 죽어야 너도 죽게 만들 거야. 너를 따라 죽는 게 아니라 나를 따라 죽게 만들 거야. 네가 사라지도록 두고 보진 않을 거야. 살아남을 거야. 살아서 너를 기억할 거야.
사람의 탄생이란, 어쩌면, 뿌리째 뽑히는 것. 사랑의 시작 또한, 어쩌면, 뿌리째 뽑히는 것.
바보 같지만 가끔 되풀이하고 싶은 모든 소란에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여야 할까. 37세의 삶에 신파를 그리워하다니 이것은 미성숙일까. 어쩌면 사랑은 새들보다 가깝고 빵보다 단단하며 조카보다 듬직한 무엇일지도. 퇴근하고 나니 비워져 있는 휴지통. 소화제를 먹을 때 옆에서 따라주는 더운물 한 컵. 늙은 부모의 터무니없는 세계관을 함께 끄덕이며 흘려듣다가 주차장에 내려와 시동을 걸기 전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뱉는 안도의 한숨.
어제 그의 눈동자에서 내가 본 것은 생각지도 못한 부류의 남자 한 명만이 아니었다. 그 안에는 새로운 내 모습도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모습의 나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하루 사는 것보다 더.” 존이 속삭였다. 이것도 우리 식구끼리만 통하는 말이었다. 이 말은 리처드 레스터의 영화 <로빈과 마리안>에 나오는 대사다. “하루 사는 것보다 더 당신을 사랑해요.”
돌고래가 짝이 죽은 뒤에 먹기를 거부하는 현상이 관찰되었다고 한다. 기러기는 짝을 잃으면 짝을 부르며 날다가 방향을 놓쳐서 길을 잃어버리는 현상이 관찰되었다.